「녹음의 향기」는 이효석이 남긴 220여 편의 작품 중 대표적 수필의 하나이다.
장미는 호화로운 잔칫상이다. 자연의 커다란 사치다. 욱욱한 향기가 숲 속에 서렸다. 마음을 주되 몸을 허락하지 않는 사랑이 있고, 몸은 수월하게 바치되 마음은 종시 헤치지 않는 사랑이 있다. 이것은 반드시 모순이 아닌 것이며 사랑에는 확실히 이 두 가지 타입이 있는 듯하다.
한 사람을 스물 다섯 해 동안 사모하고 찾아다니다가 스물 다섯 해만에 찾아낸 날 기쁨과 흥분의 절정에서 목숨을 다해 버렸다는 소설을 읽은 작가는 괴테나 로망롤랑의 소설을 읽은 이상의 감동으로 울어버린다.
“이것이 사랑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작가는 다른 드로테아 부인을 또 한 사람 창조해 보고 싶어 한다. 이국취향의 에로티시즘의 진수가 에세이 「녹음의 향기」에 넉넉히 녹아 있다.
1907. 2. 23. 강원도 봉평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가산(可山)이며 이칭(異稱)은 아세아(亞細亞)이다. 1920년 경성제일고보에 입학하여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등의 러시아 소설을 탐독하면서 문학적 소양을 키웠고, 경성제대 재학 중인 1928년 『조선지광(朝鮮之光)』의 「도시와 유령」으로 등단한다. 1930년 경성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1934년부터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친다.
등단 초기에는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을 옹호하는 이른바 제3기 프로문학의 성격을 띤다. 이후 프로문학의 퇴조와 함께 순수문학을 표방한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자연을 배경으로 한 에로티시즘의 세계로 몰입한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동반자적 경향, 에로티시즘, 이국취향의 세 가지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도 그의 문학적 본령은 에로티시즘에 있다. 성과 자연의 대비와 융합이 시적인 문체와 세련된 언어를 통해 서정적인 작품으로 나타난다. 1933년 「돈(豚)」 발표 후 순수문학을 추구한 작가는 1936년 한국 단편문학의 수작(秀作)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한다. 이 외에도 「장미 병들다」, 장편 「화분」 등을 발표하면서 성(性)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새로운 작품 경향으로 주목을 받는다. 수필, 희곡 등 220여 편의 작품을 남기고 1942. 5. 25. 뇌막염으로 사망한다.
김동인, 현진건과 함께 3대 단편 작가 중 한 사람으로 1930년대 한국 순수문학에 큰 예술적 감동을 준 소설가로 높게 평가되고 있다.